#76(01/30/16) “고장난 제설차”

 

20160123_095745지난 금요일과 토요일에 내린 눈 폭풍으로 워싱턴 근교지역의 생활과 교통이 마비가 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매나사스는 30인치정도 눈이 쌓였습니다. 옆 집 차는 눈에 파 묻혀 버렸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다닐 길정도는 만든다는 생각에 집 앞의 눈을 열심히 치웠습니다. 팔목이 시큰하고 온 몸에 통증이 올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타운 하우스 도로는 제설차가 보통 치웠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눈 온 뒤 이틀이 지났는 데도 타운하우스 안쪽 도로의 눈이 그대로 였습니다. 동네 모든 차들이 꼼짝없이 엄청난 눈에 묶여 버렸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제설차가 눈이 그친 다음 오기는 했었는데 눈을 치우기 시작하자 마자 고장이 나버렸다고 합니다. 엄청난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화요일 아침에 눈이 치워졌습니다. 대형 제설차가 와서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대형 제설차의 숫자가 많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요구하다보니 눈을 치우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어쨌든 제설차로 인해 만들어진 눈언덕(snow bank)을 치운 다음에야 비로서 차를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아 이제 살았다!”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저는 구원의 길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힘으로도, 역량이 부족한 다른 방법으로도 우리는 구원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죄의 종으로 태어난  사람은 그 영향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누가 도와 줘야 하는데…내 지식, 철학, 또는 미약한 다른 종교를 통해서 구원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가장 큰 능력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죄인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람은 새로운 삶, 참 생명의 삶을 사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아 이제 살았다!”는 탄성이 모든 열방의 입에서 고백되어지길 소원합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5(01/16/16) “여기가 아닌데”

lost 제 아들이 대학을 준비하면서 공군ROTC도 지원했습니다. 모든 서류를 다 제출하고 마지막 과정인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면접장소는 워싱턴D.C.의 한 대학교였습니다. 먼저 걱정이 앞섰습니다. 운전이 자신있다고 해도 D.C.는 여전히 가고 싶지 않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도 많아서 복잡하고, 길도 좁고, 일방통행길도 많고, 주차할 곳도 별로 없고…등등. 그런데 어떻게 하겠습니까…아들 면접 보는데 가야지요.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미리 구글맵을 이용해서 가는 길도 펜으로 그리고, 대학교 캠퍼스 지도도 출력했습니다. 오후 2시 면접인데 12시 30분에 일치감치 길을 나섰습니다. 66번 고속도로를 타고 드디어 D.C.에 진입했습니다. 신호등이 많지 않은 길을 선택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갈림길에서 엉뚱한 길로 들어섰습니다. 갑자기 어디로 가야할 지 아득해졌습니다. 아들한테 스마트 폰으로 목적지를 입력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스마트 폰의 GPS의 길 안내를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습니다. 왔던 길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이에 당황한 나머지 몇 번 길을 놓쳤습니다. 심장 박동수가 점점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 곳은 빌딩 공사 현장이었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여기가 아닌데…”가만히 보니 아들이 주소를 잘못 입력했습니다. D.C는 같은 집번호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서남북 방향을 나타내는 주소를 잘 입력해야 합니다.  ‘NW’로 입력해야 하는데 ‘SW’로 입력하는 바람에 엉뚱한 곳에 도착했던 것입니다. D.C.를 헤매다가 인터뷰 시간까지 25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소를 다시 입력해서 열심히 찾아갔습니다. 간신히 2시 정각에 아들은 인터뷰 장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길은 D.C.의 길과 비교할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길입니다. 그래서 많은 철학, 종교들은 자신이 가르쳐 주는 길이 옳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한 번 죽음을 맞이 하는데 그 죽음과 이후의 삶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가다가 “여기가 아닌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은 이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죽음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시고 보여 주셨습니다.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4(01/09/16) “나의 아버지”

prodigalson제 아버님은 이미 8년 전에 돌아 가셨습니다.  아버님은 영화 ‘국제 시장’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한국의 격동의 시기를 거쳐 오셨습니다. 일제시대, 한국전쟁, 경제개발과 정치적 혼돈의 시대를 모두 체험하셨습니다. 전쟁 때는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기셨습니다. 자신보다는 자식들의 교육과 건강을 위해 악착같이 살아 오셨습니다. 오직 자녀들이 잘되는 것이 유일한 낙이셨습니다. 제가 유학와 있을 때 임종을 못뵈어서인지 아버님은 아직도 살아계신듯한 느낌입니다. 한국에 가면 안방에서 저를 반갑게 맞이 해 주실 것 같은 느낌이 아직도 듭니다. 유교적인 문화의 영향으로  표현을 잘 못하는 속 깊은 사랑이 , 작은 미소를 머금으면서 부족한 저를 맞이해 주실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엄하셨던 아버님이 누가복음15장11-24절을 읽으면서 이제서야 그립습니다.

누가복 음15장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3가지 비유가 나오는 데 모두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열심히 찾고, 결국 찾고, 그 결과 기쁨의 잔치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특히 세번째 ‘돌아온 탕자’의 비유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어떠함을 묵상하게 해 줍니다. 첫째,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자유를 주는 사랑입니다. 둘째 아들이 때도 안되었는 데 무례하게 재산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재산을 떼어 줍니다. 무례하게 요구하든 하지 않든 모든 것을 하도록 하신 것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둘째, 하나님 아버지는 기다리는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둘째 아들이 죄를 의식하고 회개하고 “죄를 얻었사오니”하고 돌아왔을 때 조건없이 받아 주셨습니다. 그 긴 기다림의 세월을 잠잠히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돌아 왔을 때 최고의 잔치를 벌이며 맞아 주셨습니다.

이 처럼 완전한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 앞에 ‘누구든지’ 나와서 회개하고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예수님은 심판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저희들을 사랑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73(01/02/16) “하늘나라의 기쁨”

img_0569201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뉴욕의 타임스퀘어의 대형 전광판에서 새해를 알리는 소식과 함께 하늘에서 알록달록한 색종이가 뒤덮혔습니다. 그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기쁨의 환호성을 지릅니다. 매년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모습이 반복이 됩니다. 새해를 맞이한다는 기쁨을 누리는 것은 자유지만 하나님은 새해가 되었다고 기뻐할 것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대하는기쁨은 그러한 찰나의 기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가복음의 15장에 몇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하나님의 기쁨에대해서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같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나오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있었던 종교지도자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그들에게는 매국노와 함께하는 예수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화가 났겠죠. 그런데 예수님은 율법주의에 빠져서 비판 잘하는 사람이나, 세리와 같이 자기 민족을 괴롭히는 사람이나 동일한 관점에서 보셨습니다. 그들 모두가 회개하며 주님께나와 구원받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는 모두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하나를 잃어버리고, 그 것을 찾아 나서고, 그리고 그것을찾아냅니다. 그러면 온동네 잔치가 열립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Rejoice with me!)”(눅15:6,9). 예수님은 그의 영생의 말씀을 들으러 오는 그 누구도 막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언제나 찾으셨습니다. 한 영혼이 구원받으면 하늘나라에서 큰 잔치가 열리고, 바로 그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기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면 올 해 예수님을 만나는 큰 기쁨의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거듭난 성도라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영혼구원하여 하나님께 큰 기쁨을 돌려드리고, 함께 큰 기쁨으로 즐기는 새해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눅15:6)“…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72(12/26/15) “물고기의 반성”

 1451175959저희 집에는 5갤론짜리 어항이 있습니다. 송사리같이 생긴 조그만 거피(Guppy) 두 마리를 키우다가 최근에 타이거 발브(Tiger Barb:납작하고세로 줄무니 네개가 있음) 두 마리와 코리 캣피쉬(Julii Cory Catfish:주로바닥에서 붙어서 생활) 두 마리를 더 샀습니다. 딸에게 주는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타이거 발브 중 한 마리가 무법자처럼 거피와 코리를 괴롭히고 다니는 겁니다. 하루 종일 어항을 휘집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타이거 발브는 무리지어 사는 물고기라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딸이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타이거 발브 두 마리를 더샀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다른 물고기들을 괴롭히지 않는 겁니다.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타이거 발브 중 가장 공격적이고 다른 물고기를 괴롭혔던 녀석이 이젠 자신의 동료들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한 구석으로 네 마리를 몰아넣고 자기 혼자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혼자서 네 마리를 왕따(?)시켰습니다. 어떤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딸이 또 인터넷을 검색해 본 결과 그 타이거 발브를 따로 잠시 격리시켜 두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마치 타임아웃(time-out)시키듯이 그 타이거 발브 녀석을 한쪽에 울타리를 쳐서 격리를 시켰습니다. 벌을 준거죠..하하하. 녀석은 그 울타리 안에서 나가고 싶어서 위 아래로 왔다갔다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말그 타이거 발브 녀석이 정신을 차렸는지 동료 물고기들과 무리지어서 잘지내는 것입니다. 햐…정말 신기했습니다. 물고기가 반성했다는 느낌을받았습니다.

저는 반성하는 물고기를 보면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공동체는 가정과 교회가 있습니다. 서로 다투고 싸우라고 주신 공동체가 아닙니다. 지키라고 주신 공동체입니다. 특히 믿음과 사랑 안에서 지켜야하는 공동체입니다. 그 공격적인 타이거 발브처럼  벌 받고, 정신차리는 것이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전3:3)”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71(12/19/15) “모인 사람들”

shephard_wise미국이 한국과 다른 점 중의 하나는 청소년 스포츠나 예술 활동이 많이활성화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고등 학교마다 미식축구, 축구, 농구, 배구, 라크로스, 수영, 레스링 등 많은 팀들이  있습니다. 지역별로 계속 경기가 진행되며 잘 하는 팀은 스테이트 경기와 전국 경기까지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오케스트라, 밴드, 합창단에 소속되어서 방과 후 활동을  합니다. 이러한 경기와 행사를 위해서 학교와  학부모들이 협력을 많이 합니다.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이면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서 음료수와 음식을 준비해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차장은 수 백대의차들로 가득 차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끝나자 마자 자녀의 경기를 보려고허겁지겁 달려 오는 아빠도 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온 가족이미식 축구하는 자녀의 경기를 보러 오기도 합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저녁마다 여기저기서 모입니다.

2천년 전 베들레헴에서도 저녁에 여러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것도 마굿간에 모였습니다.  목자들이 모였습니다. 멀리서 지혜자들도 모였습니다. 모인 것 뿐만 아니라 그 마굿간에서 태어난 한 아기를 경배했습니다. 그들이 모인 것은 초자연적인 별 빛의 인도함과, 천사의 계시를 통해서 입니다. 그래서 같은 장소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지혜자들은 그 아기에게 예물을 드렸습니다. 도무지 그 상황 자체만 보통 사람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해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아기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성경에서 예언한대로 이 땅에 오신 ‘메시야’, 즉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모인 사람들이 경배하며, 예물을 드렸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아기 예수님께 감사하며 경배와 예물을 각 교회마다 드립니다. 저의 작은 바람이 이 성탄의 계절에 있습니다. 그 모였던 목자들처럼, 그 지혜자들처럼 예수님이 계신 곳이라면 좀 누추해도.., 좀 더 나아가 예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언제든지 찾아가고, 경배하고, 주의 일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됬으면 좋겠습니다.

#70(12/12/15) “멈춰버린 로봇”

robot_competetion오늘 새벽부터 분주한 하루였습니다. 제 아들 찬욱이가 로봇대회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자 마자 함께 참여하게 된 후배 한 명을 태우러 갔습니다. 대회가 열리는 고등학교에 데려다 준 후에집에 돌아 왔습니다. 대회가 다 끝나갈 무렵에 대회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아들이 저를 보자마자 흥분한듯한 목소리로 “아빠 우리 팔등이야!”하는것입니다. 23개 팀 중에서 8등이었습니다. 그리고 준결승까지 올라갔습니다. 다른 팀 로봇을 살펴보니 크고, 재미나게, 창의적으로 만든 로봇들이많이 있었습니다. 그뿐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후원을 받아서 팀원들이 유니폼을 입고 나온 경우도 여러 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찬욱이 팀은 단두명…로봇의 완성도도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였습니다. 그런데 8등이라니…어쨌든 기뻤습니다. 최선을 다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다른 로봇들의 경기를 보는데 로봇들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기도하고, 뒤집어져서 멈춰버린 로봇도 있었습니다. 그 날을 위해서 수 개월 동안 고생했을텐데하는 생각에 안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찬욱이 로봇은 작고, 완성도가 떨어졌지만 한 번도 멈춘적이 없었고, 뒤집어진 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속도도 굉장히 빨랐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자유의지가 있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을 잘 듣다가 안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수하고, 넘어지고, 범죄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내 맘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땐 멈춰버린 로봇을 보는 것처럼 안타까우셨을 것 같습니다. 그 안타까움의 마음을 하나님은 끝없는 사랑의 표현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 사랑의 표현이 ‘아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시고자 위대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멈춰버린 우리의 영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으시면 됩니다.

#69(12/6/15) “불시개화”

cherryblossomearly몇 주전에 페어펙스 고등학교를 가는 길에 있는 가로수에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핑크 빛의 벚꽃 모양이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같은 길을 오가면서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시력이 나빠지니까 이제 헛것이 보이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진짜 벚꽃이었습니다. 그 길 뿐만 아니라 D.C.에도벚꽃이 피었다고 합니다. 11월달에 말입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런 현상을 ‘불시개화’라고 하는데 이상 기온과 관련이 있다고 추측합니다. 갑자기 추워졌다가 갑자기 어느 정도 기온이 상승하면 나무가 계절을 혼동해서 꽃이 피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설명을 읽으면서 참 신기했습니다. 나무가 온도를 계산하고 어느 싯점에 어떤 생태 작용을 해야한다는 것이 정해져있다는 의미로 생각되어졌기 때문입니다. 꽃이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우리 신앙의 꽃도 활짝 피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꽃이 필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따듯하다 못해 뜨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님의 불 같은 역사로 뜨거워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영이 충만해서 신앙의 꽃이 활짝 필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나의 영적인 온도계는 몇도나 되는지, 개화시기는 언제쯤일지 한 번 생각해 본는 11월의 벚꽃 구경이었습니다.

#68(11/28/15) “방심하지 맙시다”

blackfriday_21110년 전에 미국에 와서 11월에 블랙프라이데이라는 미국의 소비문화를접하게 되었습니다. 각 상점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가게 문을 열기 전 날부터 줄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었습니다. 텐트를 치기도하고, 두꺼운 담요를 두르기도하면서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값싼 상품을 먼저 사겠다는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경쟁이 심하다보니 가게 문이열리자 마자 물건을 집으려고 서로 밀치다가 부상을 당하는 불상사도 심심치 않게 뉴스에 나왔습니다. 저는 한 두해 참여하다가 하지 않았습니다.정말 싸게 파는 것은 단 몇 명만 살 수 있었고, 조금만 늦어도 원하는 것을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블랙프라이데이 문화에 조금 변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블랙프라이데이 전부터 싼 가격으로 물건을 팔고있고, 인터넷으로도 물건을 쉽게 살 수 있는 경우가 많아 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처럼 길게 늘어선 모습은 줄어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올해 제 아들이 아주 저렴하게 나온 테블릿을 하나 사고싶어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그 스토어가 문열기 한 시간 전에 갔습니다.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일을 좀 보다가 문 열기 20분 전에 도착했는데 20명정도가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은 줄 서있는 사람들에게 사고 싶은 물품을 확인하고 표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들 차례가 되었습니다. 아 이일을 어쩌나…테블릿이 다 나가고 없었습니다. 결국 그것을 사지 못했습니다. 아들과 제가 방심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중요한 순간에 방심하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나중에’ ‘그 때가서’ ‘어떻게 되겠지’하는 마음은 방심하는 마음일 수 있습니다. 성경에 열처녀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비유한 내용입니다. 방심했던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만날 수 있었는데 만나지 못했습니다. 오늘 바로 내 인생을 구원해 주실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나중에는 아무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바로 오늘이 가장 빠른 구원의 날, 은혜의 날입니다.

#67(11/21/15) “꽃처럼 촛불처럼”

interview극단주의 테러집단의 공격으로 프랑스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특히 많은 희생자를 낸  바타클랑 극장에 희생자를 추모하러 온 베트남 부자(父子)의 인터뷰 내용이 화제입니다.아들은 인터뷰하면서 나쁜 사람들 때문에 겁이 난다고 했습니다. 이 때 아버지가 말합니다.

“걱정할 필요 없다. 이곳을 떠나지 않아도 돼. 프랑스가 우리 집이잖니.”

“나쁜 사람들이 총으로 우릴 쏠 수도 있어요.” 아버지는 추모객이  놓고 간 꽃과 초를 가리키며,

“그들에겐 총이 있지만 우리에겐 꽃이 있단다.”

“하지만 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나요?” 아버지는 차분히 미소를 지으며,

“저 꽃들은 총에 맞서 싸우는 거야.” “꽃과 촛불은 떠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한 거란다.”

아들은 꽃을 바라보며 방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꽃과 촛불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어요.”

세상에 많은 아이들에게 테러의 비극을 어떻게 설명해 줄지에 대한 모범 답안을 제시해 준 것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함께할 때 극복할 수 있다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인터뷰였습니다.

2000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갖은 고난을 몸소 다 당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받아야할 조롱과 멸시와 천대를 다 받으셨습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나약한 어린양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주님으로 인류에게 소망의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은 그 부활의 주님을 전하기위해서 생명을 걸었습니다. 꽃처럼, 촛불처럼 그들의 인생을 내던지고 불태웠습니다. 이러한 제자의 삶을 우리가 함께 할 때에 점점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